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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아이 말을 끝까지 다 들어주는데, 아이는 제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들어요."
상담실을 찾는 많은 부모님이 하소연하십니다. 하지만 상담 장면을 재연해 보면, 부모님은 '듣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음에 무슨 반박을 할지 '준비'하고 계신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귀로 소리를 듣는 것은 'Hearing(청각)'이지만, 마음을 읽으며 듣는 것은 'Listening(경청)'입니다. 특히 예민한 사춘기 자녀나 마음을 닫은 상대방과 대화할 때, 경청은 그 어떤 화려한 언변보다 강력한 설득력을 가집니다. 20년 차 상담 전문가로서 단언컨대, 잘 듣는 것만으로도 문제의 80%는 해결됩니다.
오늘 포스팅에서는 상담 전문가들이 사용하는 '효과적인 상담적 경청 기술' 3가지를 소개합니다. 이 기술을 익히면 상대방이 "이 사람은 내 편이구나"라고 느끼며 마음의 빗장을 여는 마법 같은 순간을 경험하게 되실 겁니다.

1. 비언어적 경청: 눈과 몸으로 듣기 (Pacing)
의사소통의 70% 이상은 말이 아닌 '비언어적 신호'로 이루어집니다. 입으로는 "말해봐, 듣고 있어"라고 하면서 눈은 스마트폰을 보고 있거나 팔짱을 끼고 있다면, 상대방은 "내 말에 관심 없구나"라고 느낍니다.
상담에서는 이를 '페이스 맞추기(Pacing)'라고 합니다. 상대방과 보폭을 맞추듯, 대화의 에너지와 태도를 맞추는 것입니다.
- 시선 맞춤 (Eye Contact): 부담스럽게 뚫어지게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눈과 인중 주변을 부드럽게 바라보며 "너에게 집중하고 있어"라는 신호를 줍니다.
- 개방적인 자세: 팔짱을 풀고 몸을 상대방 쪽으로 약간 기울이는 자세(Leaning forward)는 적극적인 관심을 표현합니다.
- 반응 보여주기: 적절한 타이밍에 고개를 끄덕이거나 "음", "그렇구나" 같은 추임새(최소 촉진제)를 넣어주면, 상대방은 신이 나서 더 많은 이야기를 쏟아내게 됩니다.
2. 언어적 경청 ①: 앵무새 기법 (재진술)
제대로 듣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상대방이 한 말을 '거울처럼 반사(Mirroring)'해 주는 것입니다. 이를 전문 용어로 '재진술(Paraphrasing)'이라고 합니다.
상대방의 말 중 핵심 단어나 내용을 요약해서 다시 들려주는 것입니다. 이는 "내가 당신의 말을 정확하게 이해했나요?"라고 확인하는 과정이자, 상대방에게 "내 말이 온전히 수용받았다"는 안도감을 줍니다.
[예시 상황]
아이: "학원 선생님 진짜 짜증 나. 숙제도 엄청 많이 내주고, 나만 미워하는 것 같아."
부모 (X): "네가 평소에 숙제를 안 해가니까 그렇지. 선생님이 널 왜 미워하니?" (판단/비난)
부모 (O): "숙제가 너무 많아서 힘들고, 선생님이 너만 미워하는 것 같아서 진짜 짜증 났구나." (재진술)
이렇게 상대의 말을 그대로 돌려주기만 해도, 아이는 "맞아! 내 말이 그 말이야!"라며 격한 공감을 느끼고 방어벽을 허물게 됩니다.
3. 언어적 경청 ②: 빙산의 아래 읽기 (감정 반영)
경청의 고수 단계는 말 뒤에 숨겨진 '진짜 감정'을 읽어주는 것입니다. 이를 '감정 반영(Reflection of Feeling)'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고 돌려서 표현하거나, 화를 내는 것으로 덮어버립니다. 이때 상담자는 탐정처럼 그 이면의 감정을 찾아내어 언어로 명명해 줍니다.
[예시 상황]
아이: "이번 시험 망쳤어. 난 역시 머리가 나쁜가 봐. 다 때려치울래."
부모 (X): "다음에 잘 보면 되지. 벌써 포기하면 어떡해?" (조언/충고)
부모 (O): "열심히 준비했는데 결과가 안 나와서 많이 실망스럽고 속상하구나. 자존심도 상했겠네." (감정 반영)
아이가 스스로도 몰랐던 '속상함', '두려움', '좌절감'을 부모가 읽어줄 때, 아이는 비로소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와 객관적으로 상황을 볼 수 있게 됩니다. 해결책은 감정이 해소된 그 이후에 찾아도 늦지 않습니다.
결론: 입은 닫고 가슴을 여세요
효과적인 경청의 가장 큰 적은 '조급함'입니다. 상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건 아니고~", "내 생각에는~"이라며 끼어들고 싶은 충동을 참는 것이 경청의 시작입니다.
상담적 경청은 기술이기 이전에 '태도'입니다. "당신의 생각과 감정은 당신의 입장에서는 타당하다"는 존중의 마음으로 들어주세요. 누군가 내 이야기를 온전히 들어준다는 경험, 그것 자체가 사람을 살리는 최고의 치유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