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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 중에서도 '따돌림(왕따)'은 가장 잔인하고 은밀한 폭력입니다. 신체적인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아물지만, "너는 쓸모없는 존재야", "아무도 너를 좋아하지 않아"라는 무언의 메시지는 아이의 영혼 깊숙이 박혀 스스로를 갉아먹기 때문입니다.
가해자가 처벌받고 상황이 종료되었다고 해서 아이의 고통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피해 학생이 대인기피증, 등교 거부, 그리고 심각한 자기혐오에 시달립니다. 20년 동안 상처받은 아이들을 만나온 상담 전문가로서 말씀드리자면, 이 시기의 치유는 **'무너진 자아를 재건축하는 과정'**과 같습니다. 뼈가 부러지면 수술과 재활이 필요하듯, 마음의 골절상에도 전문적인 치료 과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오늘 포스팅에서는 따돌림 피해 학생이 겪는 심리적 후유증을 진단하고, 상담실에서 이루어지는 구체적인 치유 단계와 가정에서 자존감을 회복시키는 실질적인 방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 "내가 문제라서 당한 걸까?" : 왜곡된 인지부터 교정해야 합니다
따돌림 피해 상담의 첫 단추는 아이의 머릿속에 각인된 '피해자 낙인'을 지우는 것입니다. 왕따를 오래 당한 아이들은 가해자들의 비난을 내면화하여, 따돌림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으려 합니다. "내가 못생겨서, 내가 성격이 이상해서 당했다"고 믿는 것입니다.
이런 '인지적 왜곡(Cognitive Distortion)'이 계속되는 한 자존감 회복은 불가능합니다. 상담 과정에서는 '외재화(Externalization)' 기법을 통해 문제와 사람을 분리합니다. "네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나빴던 거야. 너는 폭력의 원인 제공자가 아니라 피해자일 뿐이야"라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인지시켜, 부당한 죄책감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치유의 핵심입니다.
2. 심리 상담의 3단계 프로세스: 안정, 표출, 재통합
전문적인 심리 상담은 보통 다음과 같은 단계로 진행되어 아이의 마음 근육을 회복시킵니다.
- 1단계: 안전감 확보 (Stabilization)
세상 모든 사람이 적처럼 느껴지는 아이에게 상담사는 '절대적으로 안전한 내 편'이 되어줍니다. 어떤 이야기를 해도 비난받지 않고 수용 받는 경험을 통해, 얼어붙었던 경계심을 녹이고 "세상은 생각보다 안전한 곳일 수 있다"는 믿음의 씨앗을 심습니다. - 2단계: 감정의 해독 (Venting)
억눌러왔던 분노, 억울함, 슬픔, 공포를 밖으로 끄집어냅니다. 말로 하기 힘들어하는 경우 미술 치료나 모래 놀이 치료 등을 활용합니다. 마음속에 고여 썩어가던 감정의 독소를 배출해야만 새 살이 돋을 수 있습니다. - 3단계: 유능감 회복 (Restructuring)
과거의 상처에 매몰되지 않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도록 돕습니다. 아이가 가진 강점을 찾아내고, 작은 성공 경험을 설계하여 "나도 괜찮은 사람이다"라는 자기 효능감을 되찾아주는 과정입니다.
3. 부모님이 가정에서 해줄 수 있는 '마음 재활 운동'
상담실 밖, 일상생활에서 부모님의 역할은 '재활 트레이너'입니다. 무리하게 친구를 사귀라고 강요하기보다는, 아이가 혼자서도 단단하게 설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첫째, 섣부른 용서나 화해를 강요하지 마세요.
"이제 그만 잊어라", "친구끼리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은 2차 가해입니다. 아이가 충분히 미워하고 분노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세요. 충분히 슬퍼한 뒤에야 비로소 떠나보낼 수 있습니다.
둘째, '새로운 집단'에서의 성공 경험을 만들어주세요.
학교라는 공간이 아이에게 지옥이라면, 학교 밖에서 숨 쉴 구멍을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운동 동호회, 봉사 활동, 취미 클래스 등 학교 친구들이 없는 완전히 새로운 집단에 소속되어, 그곳에서 환대 받고 인정받는 경험을 하게 해주세요. "학교 친구가 전부가 아니다"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아이의 시야는 넓어지고 자존감은 회복됩니다.
셋째, 아이의 '강점'에 현미경을 들이대세요.
따돌림을 당하며 아이는 자신의 단점만 100가지 넘게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부모님은 아이가 잊고 있던 장점을 찾아주셔야 합니다. "너는 섬세해서 글을 참 잘 써", "동물을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이 있어"라고 구체적으로 칭찬해 주어, 구겨진 자아상을 펴주세요.
결론: 상처는 치유되면 훈장이 됩니다
따돌림의 상처는 깊지만, 결코 불치병은 아닙니다. 적절한 상담과 부모님의 지지가 더해진다면, 아이는 이 시련을 통해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줄 아는 깊이 있는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지금 아이가 동굴 속에 숨어있다고 해서 다그치지 마세요. 그 어둠 속에서 상처를 핥으며 스스로 치유하고 있는 중일지도 모릅니다. 묵묵히 동굴 밖을 지키며 "언제든 나와, 우리가 기다리고 있어"라고 신호를 보내주세요. 아이는 반드시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