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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가 밥알을 세면서 먹어요.", "먹고 나면 화장실 가서 토하는 것 같아요."
최근 청소년들 사이에서 마른 몸을 극도로 동경하는 '뼈말라', '프로아나(Pro-ana)' 문화가 유행하면서, 섭식장애를 앓는 연령대가 점점 낮아지고 있습니다. 부모님들은 아이가 밥을 거부하거나 폭식하는 모습을 보면, 단순히 사춘기의 외모 관심이나 다이어트 정도로 생각하고 "그러다 키 안 큰다", "골고루 먹어야지"라며 훈육하려 듭니다.
하지만 20년 임상 경험으로 비추어 볼 때, 청소년기의 섭식장애는 음식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병'**입니다. 자신의 가치를 오로지 체중과 체형으로만 평가하는 심각한 정신 질환입니다. 오늘 포스팅에서는 거식증과 폭식증 뒤에 숨겨진 아이들의 **외모 강박 심리**를 분석하고, 가정에서 도울 수 있는 치유의 접근법을 알아보겠습니다.

1. 다이어트와 섭식장애, 무엇이 다른가?
많은 부모님이 헷갈려 하시는 부분입니다. 일반적인 다이어트는 건강이나 미용을 위해 체중을 조절하되, 목표를 달성하거나 몸이 아프면 멈출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섭식장애는 **'멈춤 버튼'이 고장 난 상태**입니다.
섭식장애의 핵심은 '신체 이미지 왜곡(Body Image Distortion)'에 있습니다. 남들이 보기엔 뼈가 앙상한데도 거울 앞의 아이는 자신의 허벅지가 굵다며 울음을 터뜨립니다. 이는 시력이 나빠서가 아니라, 뇌의 인지 기능에 오류가 생겨 자신을 혐오스러운 존재로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논리적으로 "너 지금 너무 말랐어"라고 설득하는 것은 아이에게 전혀 통하지 않습니다.
2. 통제감의 상실: 거식증과 폭식증의 두 얼굴
양상은 다르지만 거식증(신경성 식욕부진증)과 폭식증(신경성 대식증)의 뿌리는 같습니다. 바로 '낮은 자존감'과 '통제 욕구'입니다.
- 거식증 (Anorexia): 학업, 교우 관계, 가정불화 등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는 현실에서, 유일하게 내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뿐이라고 믿습니다. 굶어서 체중이 줄어드는 것을 볼 때 비로소 성취감과 통제감을 느낍니다.
- 폭식증 (Bulimia): 공허함과 불안감을 채우기 위해 음식을 통제 불능 상태로 밀어 넣습니다. 하지만 곧이어 극심한 죄책감과 살이 찔 것이라는 공포에 휩싸여 구토나 설사약 복용(제거 행동)을 반복합니다.
두 경우 모두 음식은 배고픔을 해결하는 수단이 아니라, 불안한 감정을 처리하는 도구로 전락한 상태입니다.
3. 부모의 말 한마디가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섭식장애 아이를 둔 부모님이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외모와 음식에 대한 언급'을 멈추는 것입니다. 무심코 던진 말들이 아이의 강박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하지 말아야 할 말:
"살 좀 찐 것 같네, 보기 좋다" (아이에게는 '뚱뚱해졌다'는 비난으로 들립니다.)
"그만 좀 먹어라" (폭식증 아이의 수치심을 자극해 몰래 먹게 만듭니다.)
"네가 배가 불렀구나, 아프리카 아이들은 없어서 못 먹는데" (아이의 고통을 무시하는 최악의 발언입니다.)
아이는 이미 자신의 몸에 대해 24시간 감시하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부모님까지 그 평가에 가세해서는 안 됩니다.
4. 치유를 위한 가이드: '몸'이 아닌 '마음'을 봐주세요
섭식장애 치료는 마라톤과 같습니다. 신체적 회복과 심리적 회복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첫째, 식탁에서의 전쟁을 멈추세요.
밥을 먹이는 것에 집착할수록 아이는 더 강하게 저항합니다. 식사 시간은 '감시하는 시간'이 아니라 '편안한 대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아이가 먹지 않더라도 식탁에 함께 앉아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것부터 시작하세요.
둘째, 자존감의 근거를 외모 밖에서 찾아주세요.
"너는 날씬해서 예뻐"가 아니라, "너는 웃는 모습이 참 따뜻해", "너의 성실함이 멋져"와 같이 체형과 무관한 내면의 가치를 칭찬해 주세요. 아이 스스로 '마르지 않아도 나는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임을 깨닫게 해야 합니다.
셋째, 전문가의 도움은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체중이 표준 체중의 15% 이상 미달되거나, 구토로 인한 전해질 불균형이 의심된다면 즉시 입원 치료나 전문적인 의학적 개입이 필요합니다. 섭식장애는 우울증 중에서도 치사율이 가장 높은 질환 중 하나입니다. 가정에서 해결하려 하지 마시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상담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셔야 합니다.
결론: 있는 그대로의 너를 사랑해
섭식장애를 앓는 아이들은 겉으로는 날카롭고 예민해 보이지만, 속마음은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해달라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달라고 울고 있습니다.
부모님이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치료제는 '조건 없는 수용'입니다. 살이 찌든 빠지든, 많이 먹든 적게 먹든 상관없이 "너는 존재 자체로 우리에게 소중한 딸/아들이야"라는 믿음을 끈기 있게 보여주세요. 그 단단한 사랑의 토대 위에서 아이는 비로소 음식이라는 통제 수단을 내려놓고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