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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상담사로 20년을 일하면서 가장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순간은, 부모님들이 "우리 애는 착해서 그럴 리 없어요"라며 아이의 위험 신호를 애써 부정할 때입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위험한 순간은 가장 조용하게 다가옵니다.

자살 생각, 심각한 자해, 은둔, 가출 팸 등 극단적인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아이들을 우리는 '고위험군 청소년'이라고 부릅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따뜻한 위로를 넘어선 '즉각적이고 적극적인 위기 개입(Crisis Intervention)'입니다.

오늘 포스팅에서는 실제 상담 현장에서 있었던(신원 보호를 위해 각색된) 사례를 통해, 위기 개입이 어떻게 한 아이의 생명을 구했는지, 그리고 부모님이 놓치지 말아야 할 골든타임의 신호는 무엇인지 깊이 있게 다뤄보겠습니다.

고위험군 청소년 상담 사례로 보는 위기 개입의 중요성


1. 고위험군 청소년, 누가 해당하는가?

단순한 사춘기 반항과 고위험군은 명확히 다릅니다. 전문가들은 다음 3가지 징후 중 하나라도 보인다면 '응급 상황'으로 판단하고 즉시 개입합니다.

  • 자살 및 자해 위험: "죽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하거나, 구체적인 자살 계획을 세운 흔적(유서, 도구 검색)이 발견될 때. 손목이나 허벅지에 반복적인 자해 상처가 있을 때.
  • 현실 검증력 저하: 환청이 들리거나 누군가 자신을 감시한다고 믿는 망상 등 조현병 초기 증상을 보일 때.
  • 심각한 행동 문제: 장기 가출, 성매매 노출, 본드나 마약 등 약물 오남용, 통제가 불가능한 폭력성을 보일 때.

2. [사례] 조용했던 모범생 민수(가명)의 유서

[상황]
고등학교 1학년 민수는 평소 말이 없고 성적도 중상위권인 얌전한 학생이었습니다. 어느 날 민수는 아끼던 게임기와 운동화를 친한 친구들에게 나눠주며 "그동안 고마웠어"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친구가 담임 선생님께 알렸고, 즉시 Wee센터로 의뢰되었습니다.

[위기 개입 과정]
상담실에 온 민수는 처음에는 입을 다물었지만, 전문가의 "자살 위험성 평가" 척도 검사 결과 '고위험군'으로 판정되었습니다. 민수는 오랜 기간 학업 스트레스와 부모님의 불화로 인해 "내가 사라져야 모든 게 해결된다"는 '터널 시야(Tunnel Vision)'에 갇혀 있었습니다. 구체적인 실행 날짜까지 정해둔 상태였습니다.

상담사는 즉시 '비밀 보장 예외 원칙'을 적용하여 부모님께 연락했습니다. 처음 부모님은 "애가 사춘기라 감성적인 것뿐이다"라며 화를 냈지만, 상담사가 아이의 유서와 심리 검사 결과를 객관적으로 제시하며 설득했습니다. 결국 민수는 당일 대학병원 폐쇄병동에 보호 입원하여 집중 치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결과]
2주간의 입원 치료와 6개월간의 상담을 통해 민수는 우울증 약을 복용하며 안정을 찾았습니다. 만약 그때 "설마" 하고 넘겼다면, 민수는 지금 우리 곁에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3. 위기 개입의 핵심: "비밀은 없다"

고위험군 상담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개방과 연계'입니다. 아이가 "부모님께는 절대 말하지 말아 주세요"라고 애원하더라도, 생명이 달린 문제 앞에서는 단호해야 합니다.

위기 청소년의 뇌는 정상적인 사고 판단이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스스로 늪에서 빠져나올 힘이 없기 때문에, 외부의 강력한 힘(부모, 의사, 상담사, 경찰)이 강제로라도 끄집어내야 합니다. 이때의 '강제'는 인권 침해가 아니라 '생명 구조 행위'입니다.

4. 부모님이 해야 할 대처: 병원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많은 부모님이 정신건강의학과 입원이나 약물 치료를 '최후의 수단'이나 '낙인'으로 생각하여 거부하다가 골든타임을 놓칩니다.

하지만 고위험군 아이들에게 병원은 '가장 안전한 피난처'입니다. 뇌의 호르몬 불균형이 극에 달해 충동 조절이 안 되는 시기에는, 상담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의학적인 처치로 뇌의 흥분을 가라앉힌 후에야 상담도, 대화도 가능해집니다. "우리 애를 정신병자 취급한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부러진 다리를 깁스하러 간다"고 생각해 주세요. 마음의 골절상도 응급실이 필요합니다.


결론: 과잉 대응이 무대응보다 백 번 낫습니다

청소년기 위기 상황에서 부모님의 촉은 무섭도록 정확할 때가 많습니다. "뭔가 이상하다", "불안하다"는 느낌이 든다면, 그것은 과민 반응이 아니라 아이가 보내는 텔레파시입니다.

"별일 아니겠지"라고 넘겼다가 평생을 후회하는 것보다, 차라리 "별일 아니었는데 내가 너무 호들갑을 떨었네"라고 안도하는 편이 백 번 낫습니다. 감당하기 힘든 위기 상황이 온다면 혼자 끙끙 앓지 마시고 1388 청소년 상담 전화112, 전문 병원의 도움을 받으세요. 아이를 살리는 손은 많을수록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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