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기간 잦은 복통과 두통, 청소년 신체화 증상의 심리적 원인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기간만 되면 "엄마, 배가 너무 아파요", "머리가 깨질 것 같아요"라며 고통을 호소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걱정되는 마음에 병원에 데려가 내시경도 찍고 MRI도 찍어보지만, 돌아오는 의사의 답변은 늘 똑같습니다. "신경성입니다. 스트레스를 줄이세요."
부모님 입장에서는 참 답답한 노릇입니다. 아이가 공부하기 싫어서 꾀병을 부리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기도 하고, 반대로 정말 어디가 크게 아픈 건 아닌지 불안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20년간 수많은 청소년을 상담해 온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이 통증은 꾀병이 아니라 아이의 마음이 몸으로 보내는 긴급 구조 신호인 '신체화 증상(Somatization)'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오늘 포스팅에서는 병원 검사로는 나오지 않는 청소년의 두통과 복통, 그 이면에 숨겨진 심리적 원인을 분석하고 부모님이 어떻게 대처해야 아이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지킬 수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1. "정말 아픈 게 맞나요?" 꾀병과 신체화 증상의 차이
가장 먼저 부모님이 오해를 푸셔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아이가 호소하는 통증은 '가짜'가 아니라 '진짜'입니다. 꾀병(Malingering)은 특정한 목적(학교 결석, 시험 회피 등)을 위해 의도적으로 아픈 척을 연기하는 것이지만, 신체화 증상은 아이가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실제로 신체적 고통을 느끼는 상태를 말합니다.
심리학적으로 이를 '신체화 장애(Somatic Symptom Disorder)'의 범주로 보기도 합니다. 감정을 처리하는 뇌의 회로와 통증을 느끼는 신경 회로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아이가 감당하기 힘든 불안이나 공포, 우울감을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고 억누를 때, 뇌는 이 스트레스를 신체적인 통증 신호로 변환하여 표출합니다. 즉, 아이의 배 아픔과 두통은 "나 지금 너무 무섭고 힘들어요"라는 마음의 비명인 셈입니다.
2. 왜 하필 시험 기간에 아플까? 자율신경계와 감정 표현 불능증
시험 기간에 증상이 심해지는 데에는 뚜렷한 심리적, 생리적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자율신경계의 과도한 활성화입니다.
시험이라는 상황을 뇌가 '위협'으로 인식하면 교감신경이 흥분하게 됩니다. 마치 맹수를 만난 것처럼 심장이 빨리 뛰고 근육이 긴장하며, 소화기관으로 가는 혈류가 줄어듭니다. 이로 인해 긴장성 두통이나 과민성 대장 증후군과 같은 소화기 장애가 발생하게 됩니다.
둘째, 감정 표현 불능증(Alexithymia) 성향입니다.
상담 현장에서 만나는 신체화 증상 청소년들은 대체로 '착한 아이' 콤플렉스가 있거나 감정 표현에 서툰 경우가 많습니다. "짜증 나요", "불안해요"라고 말로 표현하면 해소될 감정을 속으로만 삭이다 보니, 그 에너지가 신체 장기를 공격하는 것입니다. 특히 완벽주의 성향이 강한 아이일수록 "성적이 떨어지면 어떡하지?"라는 불안감을 인정하기 싫어 무의식적으로 몸의 통증으로 도피하려는 경향을 보입니다.
3. 부모의 대처법: 약보다 중요한 것은 '공감'과 '이완'
병원에서 이상이 없다고 하는데도 아이가 계속 아프다고 할 때, 부모님의 대처 방식이 증상을 완화시킬 수도, 악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1단계: 통증의 실체를 인정해 주세요.
"병원에서 아무 이상 없다더라. 신경 쓰지 말고 공부나 해"라는 말은 아이에게 독이 됩니다. "검사 결과는 다행히 정상이지만, 네가 지금 배가 아픈 건 스트레스 때문인 것 같아. 많이 힘들지?"라고 아이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것이 치료의 시작입니다. 부모가 내 아픔을 알아준다는 안도감만으로도 교감신경의 흥분이 가라앉을 수 있습니다.
2단계: 결과보다는 과정에 초점을 맞춰주세요.
신체화 증상의 핵심 원인은 '시험 결과에 대한 공포'입니다. 시험 기간에는 "이번에 100점 맞으면 뭐 사줄게"와 같은 보상보다는, "결과가 어떻든 네가 열심히 노력한 과정을 엄마 아빠는 다 알고 있어. 그걸로 충분해"라는 메시지를 주어 아이의 심리적 부담감을 덜어주어야 합니다.
3단계: 신체 이완 요법을 함께 연습하세요.
아이가 복통이나 두통을 호소할 때, 진통제를 먹이는 것보다 '복식 호흡'이나 '근육 이완법'을 함께 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도움이 됩니다. 4초간 코로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6초간 입으로 천천히 내뱉는 호흡을 5분만 반복해도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되어 통증이 완화되는 효과가 있습니다.
결론: 몸이 보내는 신호, 마음을 점검할 기회입니다
청소년기의 신체화 증상은 방치할 경우 성인기의 만성 통증이나 우울증, 공황장애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아이가 꾀병을 부린다고 다그치기보다는, 아이가 짊어지고 있는 마음의 짐이 얼마나 무거운지 돌아보는 계기로 삼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만약 부모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통증이 일상생활을 방해할 정도로 심각하다면, 소아청소년 정신건강의학과나 심리상담센터를 방문하여 정확한 평가를 받아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아이의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세요.